와르르 : ‘리어왕’ 덧대어 쓰기

2024.01.25 - 01.28 /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 작, 연출 
성균예술:인큐베이터 선정작


 학내 쇼케이스 작품이었던 <리어 연습>의 주제에 '연극치료'라는 컨셉을 더해 탄생한 <와르르 : ’리어왕’ 덧대어 쓰기> 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리어왕' 속 리어왕과 그의 막내딸 코딜리아가 가족 상담을 통해 연극치료를 받는다면 어떨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연극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과정을 담았다. ‘치유의 연극’을 키워드로 우리 모두가 ‘과정의 존재들’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인물들 또한 ‘완성된 캐릭터’들이 아닌 수없이 실패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의 존재들로 그려보고자 했다.

치유의 연극  

<와르르>에서도 완성된 텍스트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텍스트 자체를 함께 창작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워크샵 과정을 거치며 도출된 화두와 키워드를 토대로 텍스트를 창작하는 방법론이었다. 연극치료협회의 연극심리상담사를 초빙하여 연극치료 워크샵을 진행하며 연극치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다졌다. 창작진이 직접 연극치료를 경험하여 공연 아이디어를 함께 찾아내고, 향후 캐릭터 분석과 연기에 대한 큰 틀을 잡을 수 있었다. 연극치료 워크샵 과정에서 진행한 ‘사물로 자기소개하기’, ‘미술을 활용한 그림 상황극’, ‘역할 상황극’, ‘이야기 치료’ 등이 텍스트로 발전되었다.

 고전 속 인물들에 의문을 품는 것, 그들을 단순히 연기하기 위해 배역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을 실제 ‘지금, 여기’의 극장으로 소환해내는 것이 주된 화두였다. ‘연극치료’와 ‘고전’의 만남을 통해 연극이 품고 있는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실패를 겪은 불완전한 개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자리를 돌아보고 함께 무언가를 다시 세워보려 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부녀 갈등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오는 상처의 주고받음, 그리고 그 불균형을 끌어안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돋보인 연극이라고 느꼈다. 상처의 흔적은 지워질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디뎌볼 수 있는 굳은살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계속 미끄러져도 ‘같이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비극의 일어서기이자 다시 쓰기다. 나란히 서있지만 나란하게 존재하지는 못한 시간들을 용기 있게 반추하고 또 위치를 바꿔보는 일. 연극 속 싱잉볼 소리는 연극 밖 우리의 자리를 둘러보게 만드는 공명이다. 그렇기에 극 중 연극치료사가 전화를 걸고 문밖으로 나갈 때 우리는 그 정적의 울림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 

 어쩌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면 ‘연극을 위한’ 연극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계속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삶보다 연극이 더 소중하거나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작업이 삶을 더 풍요롭게, 더 아름답게,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과정에 대한 고민은 결국 하나의 주제로 수렴한다. “어떻게 우리의 작업이 우리에게, 그리고 함께하는 관객에게 ‘사건’이 될 수 있을까?” ‘일화(에피소드)’는 우리를 거쳐가도 어떤 변화가 생겨나지 않지만, ‘사건’은 다르다. 사건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 사실을 나는 작법서에서 배웠다. 그리고 삶에 적용했다. 이 작업이, 이 시간이, 그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이끌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과정’은 결국 사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나를 갱신해나가기 위한 것이다. 치유를 위한 것이다. 

- 임진환 공연예술 작업노트 (2023-2025)

*<와르르 : ‘리어왕’ 덧대어 쓰기> 관객 후기, 조원용,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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